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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Younghoon Kim

에베소서(1) 1:1-6 "그리스도안에서 주신 영광스런 은혜"

* 오늘도 본문 특성상, 이론적인 부분을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좀 드라이 하실 수 있지

만, 또한 복음안에서 영혼의 기쁨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두주 전에 예고해 드린대로,

사도바울의 교회론을 담았다고 하는 에베소서를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와 함께 에베소서를 묵상하는 중에,

교회의 본래적인 의미 = 성경적인 의미를 보다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고,

그리고, 우리 각자가 주님의 교회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들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에베소서의 내용을 크게 둘로 구분합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이론적인 내용입니다. 사도바울의 깊은 철학적인 사고가 곁들여진 복음과 교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장부터 6장까지는 실천적인 내용입니다. 여기에서는,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라고 시작하면서, 성도의 거룩한 삶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에베소서에 대한 개론적인 이야기를 간단하게나마 말씀드리고 넘어가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에베소서의 저자를 말할때,

일반적으로 사도바울이 저자 라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일치와 복음의 회복을 위해서 이 편지를 기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에베소서가 쓰인 시기는,

3장 1절과 4장 1절에 보면,

“갇힌 몸이 된 나 바울” 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래요..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혀 있던 그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혔던 일이 두차례 있었는데,

첫번째 갇혔던 시기는 AD 62년경이었고, 두번째는 약 63-65년 사이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두번째 갇혔을때에 디모데 후서를 기록했고, 곧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첫번째 갇혀있던 시기에 쓰여진 서신입니다.


이때의 상황을, 사도행전 28장에서 볼 수 있는데요,,,

사도바울을 고소한 유대인들을 기다리는 동안,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아서였는지, 그는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고, 세를 얻은 작은 집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갇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집에 갇혀있으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 전도도 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약 2년동안 갇혀있으면서, 에베소서를 비롯하여,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쓰게 됩니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항구도시로서 무역이 성행하였고, 비교적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풍요의 신인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어서, 매우 음란하고 방탕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음란하고 방탕한 도시에, 에베소 교회가 세워졌는데요,,,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사도바울이 “이태동안” = 2년동안 전도한 것으로 나오지만,

20장에서는 사도바울이 직접 말하기를, 에베소에서 3년동안 머물면서, 에베소 교회를 세웠다고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상황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교회가 분열되었고, (오늘날에도 율법적인 신앙인들에 의해 교회가 분열될 수 있습니다. 다른 교우들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의 생각이 신앙적이고 옳다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도 여전히 장벽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분열되어 있는 교회에, 사도바울은 교회의 일치와 복음의 회복을 강조하면서 권면했던 것입니다.

또한 교인들중에는, 여전히 방탕한 삶을 사는 교인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성도의 거룩한 삶을 강조하면서 권면했던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1절과 2절을 다시 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에베소에 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틴 로이드존스(Martyn Lloyd-Jones) 목사님은 이 부분을 강해하면서, 에베소서가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으로 시작해야 한다 라고 말합니다.

예,, 우리는 하나님을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생활, 하나님보다는 현실에 촛점이 맞추어진 생활, 하나님 하나님 말하지만 자기 중심적으로 살고… 그렇게 살다보니, 삶이 어둡고 영혼과 마음에는 평안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겁니다.

이런 어두운 삶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루도 하나님으로 시작하고, What Would Jesus Do?...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렇게, 언제나 모든일을 하나님으로 시작한다면,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 모든 일을 아름답게 이루실 것이며, 또한 깊은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런 말도 합니다.

“성경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려고

합니다”

예, 기본으로 돌아가면 거기에서 길이 보입니다.

지금의 막막한 현실을 살아갈때는,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돌아가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엄청난 대군앞에서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옷을 찢었던 여호사밧왕이

하나님께 엎드렸을때, 길이 보였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호세아의 외침을 올해 신년새벽부흥회를 통해서 선포했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속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보여준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어떤 환란과 고통중에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우리가 살수 있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구원의 길이 보이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나님의 약속이 내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시작한 사도 바울은,

3절에서, 바로 그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의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우리가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수준의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세상에는 없는 복입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주실 수 있어요.


그래요.. 신령한 복은 이 땅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만이 주실수 있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온갖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셨습니다. 믿으시는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미 받은 그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려면,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얻은 신령한 복들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그러면 나도 너희안에 있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예, 포도나무의 수액이 가지로 전달되듯이, 우리도 이미 신령한 복을 전달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열매를 맺으려면,= 누릴려면,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주님의 약속대로, “많은(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세상에서 얻는 물질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을 얻을 수 있고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기회이지만 그러한 세상의 기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하늘에 속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안(하늘에 속한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을때, “그리스도안에서” 이미 얻은 하늘의 온갖 신령한 복들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신령한 복들 가운데, 가장 영광스런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4절과 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예,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들을 얻게 되는데요,, 그중에 가장 영광스런 복은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한때, 순교자의 집안을 무척 부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누구누구의 자녀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가문도 영광스러워서, 비석을 세우고 공적을 자랑하고 하는데,,,

하물며,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일까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영광스러운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늘의 온갖 신령한 복을 다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옛날 큰 집에는, 종들이 있고, 주인의 자녀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종들은, 같은 집에서 밥먹고 잠자고 생활을 하지만, 그 집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자기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집 주인의 자녀들은, 단지 자녀라는 이유로, 그 집의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늘의 온갖 신령한 복을 다 얻고 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 너무도 영광스러운 은혜요,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요…

4절에 보시면, “세상 창조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구절이 나오는데요,,,


이 구절은, “예정론”이라는 교리적인 부분에 사용된 구절이기도 합니다. 교리적인 논쟁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이 예정론이든, 아니면 다른 것이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권한에 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 논쟁한다면, 그것은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져보고는 코끼리는 기둥이다 주장하는 것과 같고,

코끼리의 코를 만져보고는 코끼리는 뱀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예,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권한에 속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우리가 이 구절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 그분은, 영원전부터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그 사랑은 창세전부터 작동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영원전부터 작동했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

“그리스도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다 얻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6절에서, 이런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예,

“그리스도안에서” 저와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되게 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그 은혜!

그 거저 주신 은혜는, 얼마나 영광스런 은혜인지요 !!!


요한복음 1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혹은 특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영광스러운 은혜를 거저받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 은혜를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들을 주셨습니다. 그중에 가장 영광스런 복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영광스런 은혜입니다!!!

그 영광스런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그 은혜를 찬양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의 어려운 시기에도, 그 은혜를 기억하며 찬양하게(라) 하십니다.

여러분이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교회가 되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아주신 그 영광스런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거저주신 그 은혜를 찬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과 마음을 풍성케 하시는 그 은혜를, 여러분 모두 위에 더하여 주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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