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침, 어느 교인분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등교시간이었습니다. 가다가 거울로 뒤를 보니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태우려고 Stop싸인을 펴면서 빨간 불을 번쩍이고 있었습니다. 양쪽 길 모두 지나던 차량들이 멈추겠구나 자연스럽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맞은 편 차로에서 다른 한 차량이 불을 번쩍이며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앰뷸런스(Ambulance)였습니다. 그 차량을 보는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만일 스쿨버스가 Stop싸인을 편 상태이고, 앰뷸런스가 급한 환자를 싣고 스쿨버스를 지나가야 한다면 앰뷸런스는 어떻게 할까?라는 생뚱맞은 물음이 스쳤습니다. 스쿨버스의 Stop싸인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앰뷸런스가 스쿨버스의 Stop 싸인을 무시하고 조심하면서 지나가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스스로 물었습니다. 결론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앰뷸런스가 학생들이 탈때까지 멈추어서 기다린다면, 환자에게는 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을 다른 이들에게 묻는다면, 나름대로의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각자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요즘 베스트셀러인 하버드대 교수이면서 미래학자인 후안 엔리케스(Juan Enriquez)의 책, “무엇이 옳은가”를 한달가량 정독을 했습니다.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도전이 되는 내용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라는 윤리적 물음에 대한 답을 주는 책은 아닙니다. 윤리의 가변성(可變性)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시대적인 환경과 기술의 발달로 윤리적 기준과 개념이 변한다는 전제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100여년전에 옳다 여겼던 것이, 이제는 옳지않다로 변하고, 앞으로 우리의 다음세대에서는 우리가 옳다고 여겼던 것에 대해 비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원죄로부터 SNS, 그리고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데이터와 해박한 지식으로 써 내려간 그의 논지(論旨)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제 마음속에 가두어 두었던 좁은 윤리적 기준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안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적 기준을 앞세우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에 그 기준을 두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나요? 나의 기준은 언제나 절대적이지 않는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기준을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고 정죄로 이어지면서 다른이들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옳다”여기는 윤리적 기준으로 살아 가는 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원하신 계명이며, 윤리이며, 표준이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고린도전서 16:14절에서 사도바울의 권면을 적어드립니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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